고객지원

  •  일반자료실
  • 강의자료실
  • 부품채용설명회
  • 진공산업저널

일반자료실

홈으로 > 자료실 > 일반자료실

제목 2023.4.17(월) KOVRA NEWS 등록일 2023.04.17 05:00
글쓴이 한국진공기술연구조합 조회 219

 오늘의 KOVRA 핵심 NEWS(상세 내용 붙임 참조)


□ 오늘의 헤드라인

① "한국은 안돼비아냥 잠재운 뚝심…K-반도체 신화 '결실' [강경주의 IT카페] (한경 강경주 기자) 1p


[강경주의 IT카페] 78
K-
반도체 신화 '황철주 매직'…혁신으로 주성 30년 이끌어
D
램 제조 핵심인 '커패시터증착 장비 세계 최초 개발
절박함 몸에 배어있어…'혁신 중독자'라는 별칭 얻기도
"
소부장 육성 않으면 반도체 강국 지위 사라질 것경고


경부고속도로 신갈IC 인근에서 서울 방향으로 달리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주성엔지니어링 용인 R&D센터가 보인다.


이 건물 로비 정면에는 가로 18m, 세로 13m의 초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어 방문객을 압도한다.


황철주 주성 회장에게 태극기의 의미를 묻자 "책임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도체를 둘러싼 엄중한 국제 정세 속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서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R&D센터 내부 벽면에 새겨진 황 회장의 비장한 어록들은 하나같이

책임감을 독려하는 내용들이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을 바라보는 황 회장의 절박함이 엿보였다.


한국에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던 1985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입사한 그는 엔지니어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공고 시절부터 쌓은 탄탄한 지식에 실무 경험까지 갖추자 업계에서는

일 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이 황 회장을 눈여겨보다 스카우트를

제의했고 고심 끝에 이직했다.

하지만 ASM 1993년 한국 시장을 철수하면서 황 회장은 재취업과

창업의 갈림길에 섰다.


국내 기업은 원천기술이 없다 보니 단순 하청 주문만 받았다.

전자 회로 설계에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는 창업을 선택했다.

해외에선 한국이 무슨 반도체 장비를 만드냐고 비아냥거렸다.


주성엔지니어링황 회장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1993년 주성을

창업했다.


기술적 난제에 봉착할 때마다 한국 엔지니어에 대한 해외의 야박한

평가를 상기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1995년 반도체 D램 제조의 핵심인 커패시터(capacitor)

전용 증착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핵심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하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업계에는 '황철주'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황 회장에게 '혁신'은 수사(修辭)가 아니라 인생 그 자체다.

혁신하지 않으면 죽고 만다는 절박함이 몸에 배어있어 '혁신 중독자'로 불린다.

그의 신념은 경영 어록으로 응축돼 R&D센터 곳곳에 새겨져있다.


"혁신은 1% 사소함의 누적이고신뢰는 99% 협력의 결과이다"

"전쟁에서 지면 노예가 되고경쟁에서 지면 거지가 된다"

"변화하는 만큼 성장하고차별화된 만큼 성공한다"

"경쟁력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고 먼저 잘하는 것이다"

"남만큼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등의 문구가 대표적이다.

그가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픈 역사가 있어서다.

반도체 증착 장비로 내수의 95%를 장악하며 신화를 썼지만

갑작스레 주 거래처와 관계가 끊기면서 '주성은 끝났다'는 루머가 돌았다.


기술과 자금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불안에 떨던 직원 절반이 회사를 떠났다.

황 회장은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고 답은 '혁신'이었다"고 회상했다.


황 회장은 반도체는 언제든 업황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을 다른 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주성이 만든 디스플레이 플라스마 화학 증착 장비는 국내외

주요 고객사에 공급됐다태양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반도체가 막히면 디스플레이로디스플레이가 막히면 태양광으로,

태양광이 막히면 다시 반도체로 위기를 뚫었다.

파일첨부 :